라벨이 실사구시인 게시물 표시

2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전해지는 따스한 위로, 정약용의『목민심서』(청렴, 애민, 실사구시)

이미지
전남 강진의 삭막한 유배지 ,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듯한 고독 속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이 붙들었던 것은 원망이 아닌 붓 한 자루였습니다 . 그는 자신을 가둔 벽을 원망하는 대신 , 그 벽 너머에서 고통받는 백성들의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. 그렇게 탄생한 『 목민심서 』 는 단순히 관리의 지침을 적은 행정서가 아닙니다 . 그것은 굶주리고 지친 이들을 향한 한 지식인의 절박한 연애편지이자 ,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는 세상을 향한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. 선생은 "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글을 써서도 안 된다. " 라 고 단언하며 , 권력의 꼭대기가 아닌 가장 낮은 곳의 흙먼지 묻은 발등을 바라보았습니다 . 오늘날 우리가 이 오래된 책을 들춰보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지식이 깊어서가 아니라 ,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그 뜨거운 온기가 여전히 우리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. 1. 청렴 , 가장 고귀한 인간다움의 시작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관이 갖추어야 할 수많은 덕목 중에서도 ' 청렴 ' 을 단연 으뜸으로 꼽았습니다 . " 청렴은 모든 선의 원천이며 모든 덕의 뿌리 " 라고 하는 그의 서슬 퍼런 외침은 수백 년의 세월을 지나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. 하지만 우리가 절대로 오해하지 말아야 할 핵심적인 점이 있습니다 . 다산이 말한 청렴은 단순히 남의 재물을 탐하지 않거나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.  그가 강조한 청렴의 본질은 나를 믿고 의지하는 타인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예의였으며 , 어떤 유혹 앞에서도 자신의 고귀한 영혼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치열한 자기 존중의 발로였습니다 .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치열한 일터에서 정직하게 땀 흘려 가치를 창출하고 , 아무도 보지 않는 은밀한 곳에서도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을 엄격히 경계하는 그 모든 숭고한 순간들 속에 사실 선생이 그토록 강조했던...